캐나다에 가기 전 나 또한 TV를 통해 해외에서도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영어공부를 게을리하거나 포기한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캐나다에서 영어도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들면서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리고 캐네디언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에 더 우울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 한국인 친구들을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고, 가족과 같은 그들의 친절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또 내 스스로도 기독교의 사고로 생각할 때에 내 안에서 누가 캐네디언과 한국인을 나누게 하는지. 이렇게 나누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편한 생활 반, 종교적인 생각 반을 이유로 하여 차츰 편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도전의 첫마음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에 아버지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아마 벤쿠버에서 자리를 잡고 학원을 다니며 이런 저런 일을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아버지는 나의 첫 목적과 내가 했던 말을 나에게 다시 말씀해주셨다.

'니가 가기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라' 그리고 따끔하게, '그럴거면 돌아와라'라고 말씀하셨다.

한편으론 나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는 것 같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도전도 해보기 전에 편한 생활에 스스로 위로를 얻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바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춥든 덥든, 도시건 시골이건 가리지 않고 영어를 배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시골 중에서도 캘거리 옆 롱뷰라는 곳에 한국인 주유소 사장님을 알게되어 면접을 하기로 하고, 캘거리로 향했다. 

떠나는 날까지 일주일 정도를 교회 친구들의 숙소에서 지내면서 정도 들었는데, 금새 떠나버리는 아쉬움도 뒤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캘거리로 가서 면접이 합격하든 말든 거기서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생각으로 밴프를 지나는 그레이 하운드를 타고 캘거리로 향했다.

캘거리의 첫날은 벤쿠버의 마지막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벤쿠버에는 꽃들이 피고 있는데도, 캘거리에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고, 아직 한 겨울의 모습이 였고, 한 밤중의 그랜빌은 시끌 시끌 한 반면, 한 밤중의 스티븐 에비뉴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치른 면접에서 난 단 한가지 내세울 것 밖에 없었다.

군대에서 잘 해냈다는 것. 군대에서 인정받고 잘 해냈다는 것.

군대를 다녀와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지만. 사실 경력 같은 것이 생길리 없는 노동이였기에.

군대에서 잘 해냈다는 것 하나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 당시 사장님이 날 뽑아 주셨을 때에도 뽑아 주신 것이 고마워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하나로 떠나온 캐나다에서 난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였고, 

캐나다를 다녀온 지금. 나에겐 캐나다에서의 추억이 재산이 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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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투데이 2012. 11. 13. 22:18

벤쿠버가 그렇게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벤쿠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사실 2010 동계 올림픽을 치러낸 곳이라는 것 밖에는 알지 못했고,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벤쿠버에서 한달이란 시간을 보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을 때는 마치 벤쿠버를 다 알게 된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도 벤쿠버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 스탠리 파크가 크다는 것, 그리고 큰 나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몇몇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등등을 안다고 해도 나는 벤쿠버에 대해서 진정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나는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그들이 주말 저녁에 무엇을 하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고, 얼마를 지내야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다. 다만 아직도 그 느낌만은 생생히 남아 있다. 첫아침, 해가지는 세컨비치, 새벽의 콜하버 등등 이런 저런 느낌만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내 코 끝에서 내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벤쿠버는 매일 아침 혹은 점심, 하루 중 한번은 비가 왔다. 나는 한국에서 방수쟈켓을 사고도 한번도 방수 성능 테스트를 한적도 없었는데, 벤쿠버에서는 아니 캐나다에서는 정말 유용한 쟈켓이 되었다. 처음 벤쿠버에서 비를 만났을 때, 다른 한국인 친구들 처럼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가 오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았고, 심지어 좋은 모직코트를 입고도 가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방수자켓을 입고도 우산을 받쳐든 내 자신에게도 내리는 비를 맞아볼 것을 권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비가와도 대단치 않은 일로 생각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뭔가 그들과의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그 때엔 그렇게 공유할 것이 없었다. 누군가와 말을 시작해도 어느 순간인가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고, 공감할 수 없었다.

처음의 신기함으로 시작된 나의 영어는 바닥을 보이고 추락하고 있었다.

결정적 사건은. 지금 생각하면 별일이 아니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나 부끄러웠고, 주변 사람 모두가 그 일을 알고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이리저리 알리고, 도착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난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도시에서 살아 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정도 신나게 이리저리 길도 묻고 산책을 하다가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도 걸어보면서, 생활 영어를 배워가던 중 SIN카드(사회보장번호카드)를 발급하러 갔을 때였다.

서비스 캐나다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처음 나를 상담해 주었고, 나의 SIN카드 발급을 도와주었다. 나는 여전히 can I와 I want 만으로 말을 했고, 물론 문제는 없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묻는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그렇게 짧은 영어로 발급을 마치고는, 다음날 신청서에 주소를 추가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찾은 서비스 캐나다에서 이번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 사람은 나의 의도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신청서에 주소를 추가하고 싶다. 그 사람은 왜 추가가 하고 싶으냐. 도서관 카드를 만드는데 주소가 들어간 공문서가 필요하다. 그러니 주소를 추가해달라...이리저리 해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국인 통역을 불러주겠다고 자리를 비우더니... 어제의 그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나는 한국말로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이해를 했고, 그 순간 나는 나의 영어실력이 부끄러웠다.

그날이였다. 그날부터 그 순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트에 가면 혼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 셀프계산대를 사용하고,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호스텔에 들어가서야 한국말로 이런저런 짧은 이야기들을 했다.

그 때 난 자주 바닷가를 거닐었고, 가끔 떨어질 듯한 눈물을 감추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았다. 매일 해질녘이 되면, 세컨비치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가족들을 그리워 했다. 바다 건너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동생.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가.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학원을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가지고 있던 10년의 영어 공부는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끝없이 차가운 우울에 잠겨 있었다.

차가운 비보다 문득문득 느껴지는 외로움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웠고, 기댈 곳 없는 타국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외로움을 찾아 온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왔던 친구, 나보다 늦게 온 한국인 친구들도 하나둘씩 앞으로 나아갈 때.

난 뒤에서 발을 뗄 용기를 갖지 못하고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만나게 된 친구들이 벤쿠버의 first baptist church의 kofel친구들이였다.

난 찬양하고 싶었고, 예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엔 한국 친구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곳이였다.

벤쿠버의 겨울비, 그보다 차가웠던 나의 우울, 그리고 따뜻했던 교회의 한국 친구들.


-콜하버에서 바라본 벤쿠버

-해가 뜨는 아침의 콜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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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투데이 2012. 11. 9. 00:16

나는 많은 여행을 해보진 않았지만, 어느 나라든 여행을 가게 되면, 첫인상이란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일 수도 있고, 착륙 전 보게 된 도시의 야경이 될 수도 있고, 출입국 사무소에서의 첫인상이 될 수도 있으며, 공항을 나설 때의 풍경 등등 가장 강렬하게 남겨진 것이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나에게 캐나다의 첫인상이란 벤쿠버의 모습이였고, 그 첫인상은 공항을 나와 다운타운으로 나왔을 때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벤쿠버 공항에서 날 반겨주던? 해파리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밖이 어둡지 않았는데,  신청했던 민박집의 라이드를 취소하고 전철을 타기 위해 공항을 빠져 나갈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후였다. 내가 동전을 구하지 못하고, 또 숫기가 없어서 안내센터에서 전화를 빌려쓰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이미 어둠이 깔린 것이다.


- 벤쿠버에서 나의 짐들을 기다리며...


그 때 나는 정말 'Can I...?' 와 'I want to....' 만을 가지고 이리저리 아는 단어들을 붙여서 입을 떼기 시작하던 때였다. 커다란 배낭과 캐리어와 잡다한 짐들을 모두 들고 옆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I want to go to here.'를 말하자. 이래저래 저래이래...설명을 열심히 해주고, 뭐...대충...이리저리 설명도 해주고,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검색도 해주었지만. 내가 알아듣는 부분은 일부분 이였기 때문에 일단 이리저리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짐을 모두 들고 스카이트레인을 그랜빌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이미 어둠은 짙게 내려있었고, 그 명성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지상으로 올라오니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지도를 들고 있을 때에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 고개를 드니 내 앞에 있는 외국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어떻게 내가 가려는 민박집에 갈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를 기다렸고, 그 버스를 타고 갈 때에도 내가 물어보려고 하면 모두들 친절하게 가야할 길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이 그리 많지 않았고, 처음 외국에 나간지라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이리저리 무거운 배낭과 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닐 때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까지 해주면서 길을 찾아주었다.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이였다.

그렇게 내가 가야할 곳을 눈 앞에 두고 이리저리 돌아 다닌 끝에 숙소에 도착할 때 쯤 어디선가 대포소리가 들렸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들었던 지뢰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꿈과 같은 나의 첫 해외여행에 들떠. 무슨 축제 쯤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유난이 컷던 달 또한 해외에서 처음보는 달이니 만큼 해외는 달이 더 크구나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방금 전에 대포소리는 9시를 알리는 대포 소리였고, 내가 도착한 날이 슈퍼문이여서 달이 매우 큰 날이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본 캐나다의 첫인상은 이렇게 몇번이나 중복되어 전해진 친절로 정리된다.

한번 뿐이 아닌 몇번이나 계속 되었던 친절한 모습의 캐네디언들은 나에게 캐나다란 친절한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후에 그 사람들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그들의 그 친절했던 모습 뒤에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끝내 나는 그들의 친절이 진심이였다는 것으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 뒤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들의 친절이 몸에 벤 습관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에게 그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는 것 같다.

후에 미국에서의 첫인상을 생각하면 캐나다의 첫인상은 더욱더 짙어진다.


-9시를 알리는 대포소리를 들었던 숙소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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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투데이 2012. 11. 8. 00:21

내가 탄 비행기가 벤쿠버에 도착하는 그 순간.

그 진동과 함께. 그리고 내 벅찬 가슴과 희망, 꿈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였을까?

6년전..?

나의 아버지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위해 건너가셨었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아들들을 좀 더 좋은 사회에서 키우기 위해. 하지만 아버지는 3달이 채 되기 전에 돌아오셨고, 몸도 아프셨다. 그 때 당뇨를 얻으셨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고, 내가 20살이 넘어 한번인가 약물쇼크로 쓰러지셨다.

그래도 그저 그러려니. 연세가 많으셔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진동과 함께 마치 영화를 보던 중 알지 못했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 것 처럼. 아버지가 6년전 느꼇을 진동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나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20대에 나의 도전을 위해 나의 나라를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왔다면, 아버지는 60세가 다되셔서, 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갔으며, 그 세상에서 아버지는 실패를 경험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으며, 아버지에겐 무엇보다 가족이,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들들의 삶이 아버지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새로운 도전은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시간이 흐르고 내가 비행기 첫 착륙의 진동을 느낄 때에, 내가 도전의 첫발을 내딛을 때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난 벤쿠버에 착륙과 동시에 눈물을 흘리며,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착륙, 진동, 눈물.......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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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투데이 2012. 11. 5. 23:32

나는 젊음이란 꿈을 꾸는 동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늙지 않기 위해 꿈을 꾼다. 이루지 못할 꿈이 되기도 하고, 이루지 않는 꿈이 되기도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한번 시작하면 계속 남아 있다. 이루기 전까지는 이루지 못한 꿈에 계속 미련이 남는다.

나에게 여행이란 것이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여러 책을 통해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지만, 항상 책 뒤에서 세상을 보며, 단 한번도 제대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2010년 전역을 앞둔 나에게 아버지는 여행을 권했다. 더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여행을 권함으로써 나는 지금까지 도망치던 나의 뒷모습을 봐야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전역하면 뭐할래? 여행 한번 해봐야지?'라고 말씀 하실때. 아버지가 나를 여행시켜준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행은 돈으로 가는게 아니고 마음으로 가는 것이고, 가방을 싸면 가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그 순간은 살짝 아니. 많이 실망했다...

하지만 그런 말씀 덕분에 좀 더 자신있게 배낭을 싸고 첫발을 뗄 수 있었다.

2010년 한해를 일만하고 지낸 것 같다. 그 땐 친구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사회적인 관계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니 그 순간 나는 사회적인 관계. 그 따뜻함과 귀찮음을 느끼지 못했다. 술을 먹지 않는 나는 친구들과 만나도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은 보통 많은 사람들이 호주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호주는 보통 지원만 하면 가는 것에 비해 캐나다나 다른 나라들은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캐나다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메리카 대륙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그 밑에 남미까지도 여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는 호주보다는 어려운 캐나다에 일단 지원을 해보고 떨어지면 호주라도 가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하반기 공지가 캐나다 대사관에 올라온 후 준비하라는 여러가지 서류들을 준비하고는 필승의 다짐으로 어떻게 합격할 수 있는지 알아본 결과. 서류만 미비하지 않다면 거의 선착순. 혹은 9시 정각에 우체국에 접수하는 것이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라는 것을 알고는 준비된 서류를 준비해서, 새벽 6시부터 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다...

좀 긴장했다거나 설레발을 친 경우가 되어버린 것은 9시 몇분 전에 온 다른 지원자도 똑같이 9시에 접수를 하면서 난 좀 특이한 사람이 되버린 것 같았다.

이제 나의 손을 떠난 서류는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그냥 천천히 기다리기로했고, 2월 정도에 집에 등기가 왔었다는 작은 쪽지가 문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캐나다 대사관이라고 쓰여진 발신인을 보고는 드디어 가는 구나 생각하며, 다음날 서류를 받아 들고 사진도 찍고 카페에 인증샷도 올리고 그랬었다..

어렵지 않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합격 한 후 나는 비행기표만 사고, 그저 기다렸다. 그 때에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안해 본 것에 대해서도 많이 들은 것으로 조언을 한다는 것이였다.

나는 한국에서 숙소도 구하지 않고, 일단 가서 뭐든 하겠다는 막무가내로 기다림을 선택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숙소를 구해야 한다느니, 초기에 필요한 것을 사가야 한다느니. 하면서 겁을 주었고, 숙소 문제에 관해서는 보지 않으면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초기에 필요한 것은 조금씩 준비를 했다. 하지만 가기 전에 꾸려본 가방은 내 상상을 뛰어 넘어 엄청나게 커지고 많아 지고, 무거워졌다. 

원래는 커다란 배낭 여행용 백팩 하나만을 가지고 갈 생각이었으나 다 챙긴 짐은 커다란 캐리어 하나. 기존에 커다란 백팩. 일반 백팩. 크로스백. 책을 넣을 쇼핑백. 이렇게 5개나 되었다. 나중에 보니 정말 어디 이민가는 것 같았다.

처음가는 여행인데다 해외 멀리 가는 여행이다 보니 이런 저런 에피소드도 많다.

집에서 출발을 하면서 다 챙긴 가방을 아버지의 차에 싣고 다 챙긴 것을 확인하고 공항행 리무진을 타러 갔을 때. 내가 캐리어를 잠그고 캐리어 키를 안 챙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이 나서.(침대위에 뒀었다...) 아버지께서 다음 리무진에 보내주셨는데. 작은 키 하나도 돈을 내며 보내 주신 것을 알고는 '내가 조금만 정신 안 차리면 안되겠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또.

공항에 처음 가다보니 잘 몰랐던 탓에 보딩타임에 공항에서 출입국 검사를 하면 되는 줄 알고 천천히 공항 구경도 하고 작별인사도 하다가. 나중에 보니 국제선 출국장은 저 멀리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허겁지겁(항상 공항에서 허겁지겁 할 때면 '나홀로 집에'가 생각난다.) 터미널까지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이차저차 비행기에 올랐을 때. '아 이제 가는구나'라고는 생각 했지만, 사실 잘 느낄 수 없었다. 최저가의 항공을 선택했기에 베이징에서 경유를 할 때에도 너무 늦은 시간에 베이징 공항에 경유를 하다보니 삭막하면서 밝기만한 베이징 공항에서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하는 여행이라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는지 안쓰러울 정도인데, 여권과 돈등 중요물건을 목에 걸고 옷 제일 깊숙히 넣어두고 다니고, 백팩에 있던 노트북은 계속 꺼내서 검색을 받아야되서 나중에는 책과 함께 쇼핑백에 넣어가지고 다니게 되었으며, 그 결과 공항을 돌아 다니면서도 백팩에 크로스백에 쇼핑백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여행에 좋은 징표는 이미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베이징 공항에서 경유하는 동안 wi-fi 아이디를 받으려 할 때 중국계 캐나다인을 만났다. 그 사람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긴장을 좀 풀 수 있었다.

(그 때 그 여자가 쓰던 컴퓨터도 애플의 컴퓨터 였다. 그 뒤로도 난 많은 애플 제품들을 보게 되었는데, 느낌 상 사람들이 과시를 위해 애플 제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혹은 편리에 의해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애플 핸드폰은 그래도 조금씩들 쓰지만.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또한 일부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쓰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않고 애플제품이 편리해서 쓰는 사람들 조차 그런 부류로 묶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처음 접한 애플부터 후에 목사님의 가족들이 쓰는 애플 PC들을 보면서 나 또한 맥 os도 사용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애플에 빠지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서 이 후에 애플제품들을 구입하고 있다.)

중국항공을 이용하면서 불편했던 점 한가지는 중국 승무원이 한국인인 나를 자꾸 중국인으로 착각하고 중국말로 첫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였다. 기내식을 줄 때에도 나에게 중국말로 물어보면 난 매번 영어로 해달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떤 것도 불편하지 않았고, 장시간 비행을 즐길 수 있었다.

알래스카 쪽으로 건너갈 때는 창밖을 보면서 신기한 광경을 창 밖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외국에 왔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은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바퀴가 땅과 닿아 느껴지는 그 충격과 함께 였다.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 작은 진동과 함께 난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꿈을 이룬 행복감에 젖은 것이 아니라 가족, 우리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이였고, 그제서야 엿볼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에 관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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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투데이 2012. 9. 4. 23:24

2년의 고된 여행이라면 다들 군대에서의 시간이라고 눈치를 채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하지만 고되다고 표현하지만 난 그 시간을 재밋게 즐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년이 채 안되는 시간 속에서 1년이란 시간은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했고   그 뒤 1년이란 시간은 지난 일년 열심히 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고 힘을 실어 주어서 재밋게 지낼 수 있었는데, 1년 열심히 하고 나니, 남은 일년을 막 보낼 수가 없어서....결론적으론.. 2년이란 시간 꼬박 이리저리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에 겁먹지 않고 해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펑펑 나오는 이런 저런 꼼수 아닌 꼼수들도 나름 도움이 될 때가 정말 많다. 

가령 여행 가방을 군장처럼 예뿌게 꾸린 다던가. 아침에 구보하듯, 새로운 곳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에 조깅이라던가. 무거운 백팩을 메고 걷는다던가.. 그리고 거기에 크로스백을 메면서.. ' 뭐 이정도면 군장에 소총보단 낫지'라고 생각한다던가...유스호스텔에서 자면서 마치 내무반에 다시 온 듯한 느낌이라던가....

참 많다.

여하튼 전역 후 나의 인생에서 군대에서의 2년의 고된 시간은 참 많은 도움이 된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군대 이야기만 많이 할까..하고 나도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2년이란 시간동안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이 세상 다 같은 하나의 군대 이야기 인 것처럼 치부하거나. 귀찮은 군대 이야기 쯤으로 들어주지 말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근데 왜 다들 비슷한지는...마치 군복이 다 다른 패턴이지만 다 같은 군복인 것과 같은 식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나의 군대 생활도....라고 이곳에 군대 생활을 풀어보고는 싶지 않고...군대 갔다온 친한 친구들이랑 풀어놓기로 하고.


시작은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 가기로 한 이유. 꿈을 꾸기 시작하고 이루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캐나다에서 보고 느낀 것에 관해서 본 만큼. 또 들은 만큼. 느낀 만큼. 말하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 이지만 조금씩 잊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리고 그 생생함이 빛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렇게 남겨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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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는 내일로 기차에 올랐다. 

어쩜 저렇게 이름을 잘 지었을까. 내일로. 청춘에게 내일로란 그 단어가 만드는 부드러움은 마치 상큼한 복숭아와 같다. 만 25살이라는 나이 제한은 이 달달한 여행에 특별함을 더 해준다.

나는 만으로 25이고 내년 7월 달에 26이 되니 한번쯤 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같이 떠난 한살차이 형에겐 이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기에 나도 그 형과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내일로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나의 25년 인생에서 여행이래봤자. 군대 가기 전 반쯤 등 떠밀려 떠난 계획 14일짜리 전국 자전거 여행과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여기저기 지인과 친척집에 두루 방문하고 온 정도가 다였다. 여행이라는 꿈을 꾼 것은 그보다 더 오래전 이였지만 항상 꿈으로 간직한 채 이루려 하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은 많은 책으로 알려진 한비야씨의 기행문으로 불이 붙었고, 그 뒤로 여러가지 여행책을 읽었다.

어린시절 나의 우상은 한비야였고, 그 뒤에 일본의 이시다 유스케와 같은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시다 유스케는 자전거를 타고 7년 반이란 시간을 여행했다고 한다. 한비야에서 이시다 유스케 같은 여행을 꿈꾸게 된 것도 결국은 자전거를 타면 좀 더 쉽게 이동할 수 있고, 돈도 좀 절약될 것 같아서 그랬는데, 이시다 유스케의 모습을 보면 자전거에 이리저리 많은 것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는 일이 재밋어 지는 만큼, 나 자신이 그 책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시절 난 내가 사는 도시에서 멀리 혹은 가까운 곳도 떠나본 적이 없는 청년이였고, 여행을 꿈꾼다고, 나의 꿈은 세계 여행이라고 말하면서 단 한번도 가방을 싸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를 인정해야했고, 더 이상 책 뒤에 숨어있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떠난 첫번째 14일짜리 전국 자전거 여행은 계획은 14일이지만, 실제론 3일동안 천안-강경-정읍-광주를 끝으로 3일만에 작은 태풍 앞에 그 작은 태풍보다 작았던 나를 이끌고,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라는 우리 이모와 이모부, 우리 아버지의 권유에도, 태풍이 와서 가야된다는 핑계로 잽싸게,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실어 돌아왔다.

그 때의 여행은 하루에 100km를 가는 일정 이였는데. 사실 내 계산대로라면 하루 5시간이면 넉넉히 100km를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렸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예정대로 라면 각 각의 지역들을 관광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항상 밤이 되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달리는 동안 해가 기울어 갈 수록 나는 그날밤을 어디서 자야하는지 고민해야했다. 착실하게 폐달을 밟아 목적지에 도착하면 숙소를 찾아야 했다. 그 때의 나의 여행은 추억보단 고된 기억으로 남아있다. 혼자한 여행이고, 또한 처음한 여행이였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때에 난 그 여정을 즐기지 못했다. 단순히 어느 지역 지역을 정해놓고 매일 내가 정한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길을 즐기는 법을 몰랐다. 지금 기억해도 무엇이 나의 그 길 옆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22살 나의 첫 여행은 그렇게 북상하는 태풍을 핑계로 삼일만에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3일간의 짧은 여행 뒤 난 2년이란 시간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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