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가 그렇게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벤쿠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사실 2010 동계 올림픽을 치러낸 곳이라는 것 밖에는 알지 못했고,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벤쿠버에서 한달이란 시간을 보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을 때는 마치 벤쿠버를 다 알게 된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도 벤쿠버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 스탠리 파크가 크다는 것, 그리고 큰 나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몇몇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등등을 안다고 해도 나는 벤쿠버에 대해서 진정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나는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그들이 주말 저녁에 무엇을 하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고, 얼마를 지내야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다. 다만 아직도 그 느낌만은 생생히 남아 있다. 첫아침, 해가지는 세컨비치, 새벽의 콜하버 등등 이런 저런 느낌만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내 코 끝에서 내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벤쿠버는 매일 아침 혹은 점심, 하루 중 한번은 비가 왔다. 나는 한국에서 방수쟈켓을 사고도 한번도 방수 성능 테스트를 한적도 없었는데, 벤쿠버에서는 아니 캐나다에서는 정말 유용한 쟈켓이 되었다. 처음 벤쿠버에서 비를 만났을 때, 다른 한국인 친구들 처럼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가 오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았고, 심지어 좋은 모직코트를 입고도 가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방수자켓을 입고도 우산을 받쳐든 내 자신에게도 내리는 비를 맞아볼 것을 권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비가와도 대단치 않은 일로 생각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뭔가 그들과의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그 때엔 그렇게 공유할 것이 없었다. 누군가와 말을 시작해도 어느 순간인가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고, 공감할 수 없었다.

처음의 신기함으로 시작된 나의 영어는 바닥을 보이고 추락하고 있었다.

결정적 사건은. 지금 생각하면 별일이 아니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나 부끄러웠고, 주변 사람 모두가 그 일을 알고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이리저리 알리고, 도착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난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도시에서 살아 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정도 신나게 이리저리 길도 묻고 산책을 하다가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도 걸어보면서, 생활 영어를 배워가던 중 SIN카드(사회보장번호카드)를 발급하러 갔을 때였다.

서비스 캐나다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처음 나를 상담해 주었고, 나의 SIN카드 발급을 도와주었다. 나는 여전히 can I와 I want 만으로 말을 했고, 물론 문제는 없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묻는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그렇게 짧은 영어로 발급을 마치고는, 다음날 신청서에 주소를 추가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찾은 서비스 캐나다에서 이번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 사람은 나의 의도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신청서에 주소를 추가하고 싶다. 그 사람은 왜 추가가 하고 싶으냐. 도서관 카드를 만드는데 주소가 들어간 공문서가 필요하다. 그러니 주소를 추가해달라...이리저리 해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국인 통역을 불러주겠다고 자리를 비우더니... 어제의 그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나는 한국말로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이해를 했고, 그 순간 나는 나의 영어실력이 부끄러웠다.

그날이였다. 그날부터 그 순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트에 가면 혼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 셀프계산대를 사용하고,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호스텔에 들어가서야 한국말로 이런저런 짧은 이야기들을 했다.

그 때 난 자주 바닷가를 거닐었고, 가끔 떨어질 듯한 눈물을 감추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았다. 매일 해질녘이 되면, 세컨비치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가족들을 그리워 했다. 바다 건너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동생.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가.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학원을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가지고 있던 10년의 영어 공부는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끝없이 차가운 우울에 잠겨 있었다.

차가운 비보다 문득문득 느껴지는 외로움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웠고, 기댈 곳 없는 타국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외로움을 찾아 온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왔던 친구, 나보다 늦게 온 한국인 친구들도 하나둘씩 앞으로 나아갈 때.

난 뒤에서 발을 뗄 용기를 갖지 못하고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만나게 된 친구들이 벤쿠버의 first baptist church의 kofel친구들이였다.

난 찬양하고 싶었고, 예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엔 한국 친구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곳이였다.

벤쿠버의 겨울비, 그보다 차가웠던 나의 우울, 그리고 따뜻했던 교회의 한국 친구들.


-콜하버에서 바라본 벤쿠버

-해가 뜨는 아침의 콜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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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여행을 해보진 않았지만, 어느 나라든 여행을 가게 되면, 첫인상이란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일 수도 있고, 착륙 전 보게 된 도시의 야경이 될 수도 있고, 출입국 사무소에서의 첫인상이 될 수도 있으며, 공항을 나설 때의 풍경 등등 가장 강렬하게 남겨진 것이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나에게 캐나다의 첫인상이란 벤쿠버의 모습이였고, 그 첫인상은 공항을 나와 다운타운으로 나왔을 때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벤쿠버 공항에서 날 반겨주던? 해파리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밖이 어둡지 않았는데,  신청했던 민박집의 라이드를 취소하고 전철을 타기 위해 공항을 빠져 나갈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후였다. 내가 동전을 구하지 못하고, 또 숫기가 없어서 안내센터에서 전화를 빌려쓰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이미 어둠이 깔린 것이다.


- 벤쿠버에서 나의 짐들을 기다리며...


그 때 나는 정말 'Can I...?' 와 'I want to....' 만을 가지고 이리저리 아는 단어들을 붙여서 입을 떼기 시작하던 때였다. 커다란 배낭과 캐리어와 잡다한 짐들을 모두 들고 옆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I want to go to here.'를 말하자. 이래저래 저래이래...설명을 열심히 해주고, 뭐...대충...이리저리 설명도 해주고,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검색도 해주었지만. 내가 알아듣는 부분은 일부분 이였기 때문에 일단 이리저리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짐을 모두 들고 스카이트레인을 그랜빌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이미 어둠은 짙게 내려있었고, 그 명성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지상으로 올라오니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지도를 들고 있을 때에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 고개를 드니 내 앞에 있는 외국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어떻게 내가 가려는 민박집에 갈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를 기다렸고, 그 버스를 타고 갈 때에도 내가 물어보려고 하면 모두들 친절하게 가야할 길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이 그리 많지 않았고, 처음 외국에 나간지라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이리저리 무거운 배낭과 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닐 때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까지 해주면서 길을 찾아주었다.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이였다.

그렇게 내가 가야할 곳을 눈 앞에 두고 이리저리 돌아 다닌 끝에 숙소에 도착할 때 쯤 어디선가 대포소리가 들렸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들었던 지뢰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꿈과 같은 나의 첫 해외여행에 들떠. 무슨 축제 쯤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유난이 컷던 달 또한 해외에서 처음보는 달이니 만큼 해외는 달이 더 크구나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방금 전에 대포소리는 9시를 알리는 대포 소리였고, 내가 도착한 날이 슈퍼문이여서 달이 매우 큰 날이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본 캐나다의 첫인상은 이렇게 몇번이나 중복되어 전해진 친절로 정리된다.

한번 뿐이 아닌 몇번이나 계속 되었던 친절한 모습의 캐네디언들은 나에게 캐나다란 친절한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후에 그 사람들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그들의 그 친절했던 모습 뒤에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끝내 나는 그들의 친절이 진심이였다는 것으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 뒤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들의 친절이 몸에 벤 습관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에게 그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는 것 같다.

후에 미국에서의 첫인상을 생각하면 캐나다의 첫인상은 더욱더 짙어진다.


-9시를 알리는 대포소리를 들었던 숙소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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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비행기가 벤쿠버에 도착하는 그 순간.

그 진동과 함께. 그리고 내 벅찬 가슴과 희망, 꿈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였을까?

6년전..?

나의 아버지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위해 건너가셨었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아들들을 좀 더 좋은 사회에서 키우기 위해. 하지만 아버지는 3달이 채 되기 전에 돌아오셨고, 몸도 아프셨다. 그 때 당뇨를 얻으셨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고, 내가 20살이 넘어 한번인가 약물쇼크로 쓰러지셨다.

그래도 그저 그러려니. 연세가 많으셔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진동과 함께 마치 영화를 보던 중 알지 못했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 것 처럼. 아버지가 6년전 느꼇을 진동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나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20대에 나의 도전을 위해 나의 나라를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왔다면, 아버지는 60세가 다되셔서, 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갔으며, 그 세상에서 아버지는 실패를 경험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으며, 아버지에겐 무엇보다 가족이,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들들의 삶이 아버지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새로운 도전은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시간이 흐르고 내가 비행기 첫 착륙의 진동을 느낄 때에, 내가 도전의 첫발을 내딛을 때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난 벤쿠버에 착륙과 동시에 눈물을 흘리며,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착륙, 진동, 눈물.......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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