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가기 전 나 또한 TV를 통해 해외에서도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영어공부를 게을리하거나 포기한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캐나다에서 영어도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들면서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리고 캐네디언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에 더 우울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 한국인 친구들을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고, 가족과 같은 그들의 친절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또 내 스스로도 기독교의 사고로 생각할 때에 내 안에서 누가 캐네디언과 한국인을 나누게 하는지. 이렇게 나누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편한 생활 반, 종교적인 생각 반을 이유로 하여 차츰 편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도전의 첫마음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에 아버지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아마 벤쿠버에서 자리를 잡고 학원을 다니며 이런 저런 일을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아버지는 나의 첫 목적과 내가 했던 말을 나에게 다시 말씀해주셨다.

'니가 가기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라' 그리고 따끔하게, '그럴거면 돌아와라'라고 말씀하셨다.

한편으론 나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는 것 같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도전도 해보기 전에 편한 생활에 스스로 위로를 얻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바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춥든 덥든, 도시건 시골이건 가리지 않고 영어를 배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시골 중에서도 캘거리 옆 롱뷰라는 곳에 한국인 주유소 사장님을 알게되어 면접을 하기로 하고, 캘거리로 향했다. 

떠나는 날까지 일주일 정도를 교회 친구들의 숙소에서 지내면서 정도 들었는데, 금새 떠나버리는 아쉬움도 뒤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캘거리로 가서 면접이 합격하든 말든 거기서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생각으로 밴프를 지나는 그레이 하운드를 타고 캘거리로 향했다.

캘거리의 첫날은 벤쿠버의 마지막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벤쿠버에는 꽃들이 피고 있는데도, 캘거리에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고, 아직 한 겨울의 모습이 였고, 한 밤중의 그랜빌은 시끌 시끌 한 반면, 한 밤중의 스티븐 에비뉴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치른 면접에서 난 단 한가지 내세울 것 밖에 없었다.

군대에서 잘 해냈다는 것. 군대에서 인정받고 잘 해냈다는 것.

군대를 다녀와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지만. 사실 경력 같은 것이 생길리 없는 노동이였기에.

군대에서 잘 해냈다는 것 하나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 당시 사장님이 날 뽑아 주셨을 때에도 뽑아 주신 것이 고마워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하나로 떠나온 캐나다에서 난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였고, 

캐나다를 다녀온 지금. 나에겐 캐나다에서의 추억이 재산이 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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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투데이 2012. 11. 13. 22:18